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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고려 시대 불교의 영광과 몰락 - 국가와의 밀착에서 쇠퇴까지
고려 시대의 불교는 찬란한 문화적 성취와 함께 국가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지나친 국가 의존과 권력화, 그리고 일부 승려들의 타락으로 인해 조선의 억불정책에 대응하지 못하고 급격히 쇠퇴했습니다. 이 글에서는 고려 불교의 전성기부터 쇠퇴에 이르기까지의 역사적 흐름을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1. 국가와 불교의 밀착: 체제 종교로서의 고려 불교
고려는 건국 초기부터 불교를 국가 통합의 도구로 적극 활용했습니다. 태조 왕건은 훈요십조에서 "불교는 나라를 지키고 백성을 편안하게 한다"고 하며 불교를 정치 이념으로 삼았고, 이를 바탕으로 연등회와 팔관회 같은 국가 행사를 통해 민심을 결집시켰습니다.
왕실의 강력한 후원과 승정 제도
왕실은 수도 개경을 중심으로 현화사, 흥왕사 등 대형 사찰을 짓고, 승려들에게 파격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특히 문종의 아들인 의천은 송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와 천태종을 창시하면서 고려 불교의 학문적 수준을 한층 끌어올렸습니다.
한편, 고려는 승정 제도를 통해 불교계를 통제했습니다. 승과 제도로 승려를 선발하고 왕사, 국사를 임명하는 구조는 겉보기엔 우대 정책 같지만, 실상은 불교계가 국가 권력에 종속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이러한 구조는 시간이 흐를수록 불교 내부의 자율성을 훼손하는 부작용을 낳았습니다.
2. 팔만대장경과 사원 경제: 찬란한 문화와 내면의 부패
고려 불교의 가장 위대한 문화유산은 단연코 팔만대장경입니다. 몽골의 침입 속에서 국난 극복과 국가 안위를 기원하며 16년에 걸쳐 제작된 이 경판은 무려 81,258장에 달하며, 현재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사원의 경제적 독점과 귀족과의 결탁
그러나 화려한 문화 이면에는 경제적 불균형과 부패가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사찰들은 사원전을 통해 막대한 토지와 노비를 소유했고, 심지어 고리대와 상행위에까지 손을 뻗쳤습니다. 일부 승려들은 금지된 상품까지 거래하며 승려 본연의 역할을 망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더불어 귀족들은 자신의 원당(願堂)을 세우고 자손을 사찰 주지로 임명하면서 권력을 세습했습니다. 이는 불교계가 정치 귀족층의 권력 연장 수단으로 전락하게 되는 심각한 문제를 야기했습니다. 이러한 구조는 고려 말기 성리학자들의 강한 비판을 불러일으켰고, 조선 건국 이후 사원 재산의 몰수라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3. 승려의 타락과 사회적 비판: 쇠퇴의 서곡
고려 후기로 접어들면서 불교계 내부의 타락은 더욱 심각해졌습니다. 승려들은 점차 비승비속(非僧非俗)한 존재가 되었고, 사회적 신뢰를 잃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관직을 탐하고, 토지를 소유하며, 세속 권력에 깊이 개입했습니다.
신돈의 사례와 사회적 경고
특히 공민왕 시기의 신돈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승려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국가 정치를 주도하며 절대 권력을 행사했던 그는 결국 승려의 권력 남용이라는 부정적 이미지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고려 사회의 여러 문헌, 특히 《도선비기》에서는 "승려도 속인도 아닌 자가 나라를 어지럽힌다"는 경고를 남기며 당시 불교계의 도덕적 타락을 고발했습니다. 이에 대해 이색, 정몽주 등 성리학자들은 척불론(斥佛論)을 내세우며, 불교의 폐단을 강력히 비판하고 불교 배척론을 주도했습니다.
4. 조선 건국과 억불정책: 고려 불교의 몰락
1392년 조선이 건국되면서, 고려 불교는 체제 변화의 큰 파도에 휩싸이게 됩니다. 새로운 왕조는 유교를 통치 이념으로 삼으며 불교를 강력히 억제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종교 정책이 아닌, 체제 청산의 일환이었습니다.
제도 폐지와 상징의 제거
태조 이성계는 연등회, 팔관회 같은 고려의 전통 불교 의례를 폐지하고, 봉은사의 태조 불상을 암자로 옮기는 등 불교의 국가 상징성을 철저히 제거했습니다. 나아가 승과 제도 폐지, 사원전 몰수, 승직 철폐 등을 통해 불교의 제도적 기반을 무너뜨렸습니다.
이 같은 강도 높은 억불 정책은 고려 불교의 국가 권력 종속이 초래한 결과였습니다. 자율성과 개혁 없이 국가에 의존해 성장한 불교는, 국가의 변화에 맞서지 못하고 급격히 몰락한 것입니다.
마무리하며
고려 불교, 영광과 몰락의 이중성
고려 불교는 국가의 절대적 후원 아래 문화와 철학의 황금기를 맞이했지만, 동시에 정치 권력과 경제적 독점에 깊이 물들어 내부로부터 붕괴되기 시작했습니다. 외형은 찬란했으나, 뿌리는 약해졌던 것입니다.
결국, 불교는 조선이라는 새로운 시대의 흐름 앞에 무력하게 무너졌고, 이후 수세기 동안 억압과 침묵의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이 과정은 종교가 정치·경제와 지나치게 결탁할 경우, 얼마나 쉽게 흔들리고 타락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역사적 교훈으로 남습니다.